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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지적장애인이 ‘봉’인가요? 11개 통신상품 ‘줄줄이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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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6-10 17:03 조회9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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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봉(鳳)을 두고 이렇게 정의합니다.

'어수룩하여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통신사 상품 '줄줄이 개통'으로 피해를 호소한 지적장애인 모녀를 취재하며 이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통신사 대리점에서는 이들을 고객이 아닌, 돈벌이수단으로 여긴 건 아닐까 하고요.

■ 지적장애 모녀, 7개월 동안 11개 상품에 가입...왜?

지적장애 모녀인 김 모 씨와 딸 주 모 씨는 각각 지적장애 2급과 1급입니다. 지적장애 1급의 정신연령은 만 4세 이하, 2급은 지능지수가 35~49 사이입니다. 보통 2급은 초등학교 4학년 미만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이들은 지난해 초 통신사 대리점을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엄마 김 씨의 휴대폰 요금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모녀의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줄줄이 개통'됩니다. 지난해 2월부터 9월까지 7개월 동안 대리점 2곳에서 개통된 상품이 무려 11개입니다. 스마트폰 6대와 태블릿PC 4대, 인터넷 서비스 1개입니다. 사람은 2명인데 개통된 번호는 6개나 됐습니다. 


요금은 냈지만, 태블릿PC와 일부 휴대전화는 사용해 본 적도 없습니다. 김 씨는 태블릿PC라는 단어도 몰라서 '큰 휴대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신들이 어떤 상품에 가입했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인터넷 서비스는 모녀가 거주하는 경남 김해가 아니라, 대리점 직원이 사는 부산 지역에 설치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모녀의 가입 상품들은 개별적으로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일례로 엄마 주 씨가 가장 마지막에 개통한 휴대폰은 지난해 9월 신청한 '노트20' 기종으로 출고가만 140만 원이 넘는 최신 기종입니다. 그런데 주 씨가 지금 사용 중인 휴대폰은 'A10e'로 보급형 기기입니다.

사연을 묻자, 지난해 여름 휴대폰이 고장 났는데 대리점 직원이 '고쳐주겠다'고 하며 가져가더니 대신 'A10e' 모델을 줬다는 겁니다. 주 씨가 받은 휴대폰은 다른 사람의 사진이 잔뜩 들어있던, '중고폰'이었습니다.

또, 딸 주 씨는 지난해 9월 아이폰을 개통했는데 이를 두고 대리점 직원은 '0원'으로 개통해준 것이라고 강변했습니다. '공짜폰'으로 준 건데 무슨 피해가 있느냐는 설명이었습니다.

주 씨가 지난해 9월 개통한 아이폰 가입신청서를 보면 구매가가 '500원'으로 기재돼 있어 사실상 공짜폰은 맞습니다. 그런데 아이폰 기종이 '아이폰7'로 2016년 출시된 모델이었습니다.

주 씨의 가입 요금제는 한 달에 105,000원을 내는, 해당 휴대폰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비싼 요금제였습니다. 즉, 대리점 직원은 2020년에 2016년 아이폰을 가장 비싼 요금제로 팔며 '공짜폰' 운운한 것입니다.

■ 모녀가 내야 할 요금 매달 40만 원...보험 대출까지

이런 상황 속에서 모녀가 매달 내야 하는 요금은 40만 원에 육박했습니다. 뚜렷한 직장이 없던 모녀는 10년 동안 부은 보험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요금을 내 왔습니다.

그러다 요금이 밀리자, 지난해 말부터는 채권 추심 업체의 독촉 연락까지 받아 왔습니다. 


처음에는 '모녀가 원해서 한 것을 정상적인 가입 절차였다'고 해명하던 대리점 측은 KBS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환불을 약속했습니다. 


통신사 상품이 매년 다양하고 복잡해지며 가입 과정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지적장애인 사례가 매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보호자 의무 동행' 같은 식의 방안은 대안이 되기 어렵습니다. 장애인의 '인권'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지적장애인이면 휴대전화 가입도 마음대로 못 하는 거냐?'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10년까지는 비슷한 규정이 일부 통신사에 있었지만,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의 휴대전화 가입 등에 대한 개선공고'를 내며 모두 사라졌습니다. 현재는 통신 3사 모두 지적장애인의 독자적인 가입을 막는 규정은 없습니다.

■ 통신사의 소비자보호 의식 중요..."소중한 고객으로 여겨야"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통신사들의 '소비자보호 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지적장애인을 한 명의 소중한 고객으로 여기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충분한 설명과 맞춤식 계약서를 제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앞으로는 지적 장애인을 상대로 자행하는 사실상 갈취나 다름없는 영리 행위의 처벌 수위가 높아지는 점도 주목됩니다.

이달 30일부터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시행되는데, 장애인 상대 사기 범죄는 학대로 규정하고, 상습적인 경우 형량의 1.5배까지 가중 처벌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인터뷰 말미, 딸 주 씨는 자신들의 보호자로 나온 친척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어리석게 줄줄이 개통을 당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뒷수습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던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었을 겁니다.

사회적 약자인 이들이, 더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뉴스원문보기 (출처 :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02493&ref=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