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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서 폭행” 호소한 지적장애인…일관된 진술에도 경찰은 ‘불송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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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12-27 16:01 조회7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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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폭행 호소…경찰 ‘혐의 없음’ 판단
“참고인 조사 안 하는 등 목격자 찾는데 소홀”
피해자 쪽 “부실·소극 수사” 반발
시설 “폭행 없었다…넘어져 다친 것”
최근 검찰 보완수사 요구로 추가 수사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경남 밀양의 한 노숙인재활시설에서 생활한 지적장애인 ㄱ(45)씨가 사회복지사 ㄴ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ㄴ씨는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경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ㄱ씨 가족과 대리인은 경찰 조사가 장애인 학대 사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실 조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결국 검찰은 ㄱ씨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여 최근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어머니께서는 시설을 믿고 동생을 보냈어요. 처음 생길 때부터 좋은 일 한다고 시설에 돈을 보내기도 했어요. 몇달 뒤 동생이 멍 자국이 가득한 채로 나올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지적장애인 ㄱ씨의 형 ㄷ(51)씨는 2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ㄱ씨쪽 “상반신에 멍 가득해”


ㄷ씨가 동생에 대한 사회복지사의 폭행을 의심한 것은 지난 5월2일이었다. 시설로부터 동생이 빨래하다 다쳐 팔꿈치 통증을 호소해 응급실을 찾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입소 당시 동생이 개인 휴대전화도 소지하지 못하게 했고, 예정된 면회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미뤄지자 ㄷ씨는 동생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를 설득해 ㄱ씨를 같은달 17일 시설에서 퇴소시켰다.
퇴소 뒤 ㄱ씨를 목욕시키려던 어머니는 ㄱ씨의 어깨와 겨드랑이 등 상반신에 가득한 멍을 발견했다. ㄷ씨는 “동생의 몸에 파랗고 노랗고 새까만 멍들이 등고선처럼 얼룩져 있었다. 다시는 시설에 안 보내겠다고 동생을 달래자, 그제야 매일 사회복지사로부터 맞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ㄱ씨는 가족에게 폭행당할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ㄱ씨는 ㄴ씨로부터 여러 번 폭행을 당했다며, 바지와 이불에 소변을 봤다는 이유로 화장실에서 어깨 부분을 수차례 발로 맞거나 시설 차량에서도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결국 ㄱ씨 가족은 ㄴ씨와 시설 대표자 ㄹ씨를 고소했고, 이들은 지난 5월31일 경남밀양경찰서에 장애인복지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그러나 4개월 뒤 경찰은 해당 사건을 검찰로 넘기지 않고 종결했다. ㄱ씨의 진술 이외에 학대 정황을 확인할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지난 4∼5월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확인했으나 폭행 정황을 찾을 수 없었고, ㄱ씨가 응급실에 갔을 때도 팔꿈치 타박상 외에 다른 소견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시설 “학대나 폭언 없었다”


ㄱ씨의 대리인과 ㄷ씨는 경찰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주장한다. 경찰이 ㄱ씨와 같은 생활실에 거주한 이들에 대한 직접 조사 대신,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참고인 조사를 인용해 “참고인들은 피의자에 의한 피해자의 폭행 장면을 본 적은 없다”고 판단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대리인과 ㄷ씨는 ㄱ씨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곳이 CCTV로 촬영될 수 없는 곳인데 경찰이 CCTV에만 의존해 결론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가해자의 진술이 바뀐 것도 석연치 않다고 본다. ㄱ씨가 응급실에 방문한 경위에 대해 ㄴ씨는 응급실에서는 “빨래하다가 넘어졌다”고 진술했다가,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조사에서는 “샤워 도중 넘어졌다”고 진술했다.
ㄴ씨와 시설은 학대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시설 쪽 관계자는 “ㄱ씨가 소변을 잘 못 가리다 보니 사회복지사가 (소변이 묻은 속옷을) 빨래하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넘어져 팔꿈치 타박상을 입었을 뿐”이라며 “시설에 사는 다른 생활인들도 ㄴ씨의 폭언 등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다만 시설 내부에 CCTV가 없고, 생활인 등이 경찰의 참고인 조사를 직접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ㄱ씨가 휴대폰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한 데에 대해서는 “ㄱ씨가 한차례 퇴소한 후 다시 입소했는데, 이전에 가족들에게 밤낮없이 전화하다 보니 시설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어 다시 입소하면서 휴대폰을 임시로 쓰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밝혔다.

“진술 일관되는데…목격자 찾는데 소홀”

수사기관이 학대를 당한 지적장애인의 증언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여러 정황에도 적극적으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ㄱ씨 대리인과 ㄷ씨는 반발한다. 2014년 대법원은 지적장애 피해자의 진술 역시 아동의 피해와 마찬가지로 진술 내용이 일관성이 있고 명확한지, 세부내용의 묘사가 풍부한지, 가해자나 사건에 대한 특징적인 부분에 관한 묘사가 있는지를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ㄱ씨의 대리인 이현우 변호사는 “학대 장애인 사건의 경우 여전히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며 “현장을 비추지 않는 CCTV 확보에는 힘을 쓰면서, 당시 상담일지 등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당시 상황을 진술해 줄 목격자를 찾아내려는 노력도 부족했다고 주장한다. 형 ㄷ씨는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오는데 다른 입소자가 ‘그만 맞아도 되겠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ㄱ씨가 시설 퇴소 약 일주일 뒤 촬영한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검사 결과를 제출했지만 이 역시 증거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형 ㄷ씨가 해당 시티 검사 결과를 토대로 부산의 한 병원으로부터 받은 소견서는 ㄱ씨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어깨에 대해 “일반적인 낙상에 의한 골절이 아닌 외상에 의한 골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11월 인천미추홀경찰서가 인천장애인수영연맹 소속 선수들을 상습 폭행한 혐의를 받는 코치 2명을 구속한 사건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 사건도 CCTV 영상은 없었지만 경찰이 목격자를 찾아내 혐의를 입증했다. 인천미추홀경찰서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구체적인 일시와 장소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들의 진술이 일관된 것에 주목했다”며 “목격자를 확보하는 데도 주력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 제도 유명무실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지난 2015년부터 시행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발달장애인은 특별한 사정이 없을 경우 지정된 발달장애인 전담수사관이 조사해야 하지만, 해당 사건은 전담수사관이 아닌 일반 수사관이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각 경찰서의 상황에 따라 전담수사관이 배치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현우 변호사는 “지난 8월 전담수사관 배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밀양경찰서 관계자는 “최근 검찰로부터 해당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를 받았다”며 “참고인 조사 등을 추가로 진행하는 등 성실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