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달', 장애인이 처한 현실은 냉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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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5-06 11:07 조회1,405회본문
4월을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 데 벌써 4월 말로 향하고 있다. 매해 4월이면, 어김없이 ‘장애인의 달’이다. 이달에, 정부에선 장애인 이해 및 장애인의 재활 의욕 고취와 복지 증진 계기 마련 취지에서 ‘장애인의 날’을 4월 20일로 제정해 기념 행사를 갖는다.
그런데 ‘장애인의 달’을 보내면서 여러 일을 접하다 보니,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착잡하기만 하다. 내용이 좀 길어질 수 있으니 양해 바란다.
■ ‘중앙장애인자립지원센터?’
지난달 정부는 ‘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전환 및 자립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하며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 수립, ‘중앙 장애인자립지원센터’를 신규 설치‧운영 등을 한다고 했다. ‘중앙장애인자립지원센터’는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위탁해 운영한다.
그러면 센터 운영 예산은 기재부 손에 달려 있을 텐데, 기재부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충분치 못한 예산을 매년 할당해 왔다. 위탁운영 특성상 예산이 충분치 않으면 기간제 계약직 등 고용 신분이 불안정한 인력을 뽑을 수밖에 없다.
이런 기재부의 행보를 고려하면, 중앙장애인자립지원센터 또한 예산을 충분치 않게 주고, 이는 인력 전문성 제고를 어렵게 할 것 같아 우려된다. 탈시설 장애인 욕구 사정 인력들은 장애인을 이해하는 등 장애에 대한 전문성이 반드시 있어야 함에도 말이다.
또한, 중앙장애인자립지원센터 관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의 민간위원들 가운데 자립생활운동(IL)진영 측은 한 사람도 없다. IL진영에서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하면서 ‘중앙장애인탈시설지원센터’로 명칭을 정하고 자신들을 논의 석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압박하는 의미에서 4월 초 정부를 상대로 시위한 것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이후에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중앙장애인자립지원센터를 설치할 경우, 진정한 탈시설을 이루기보다는 시설에서 시설로의 전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아 우려된다. 정부는 탈시설-자립생활 의지를 갖고, 이에 관련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장애인 당사자, 장애계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어떻게든 시설을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을 설득할만한 논리를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에서는 치밀히 준비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그런데 복지부에서 시설 측 눈치를 본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을 보면, 기득권 세력 설득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금 현재로선 갈 길이 멀지만, 탈시설-자립생활 방향으로 가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가 강하게 단결할 필요성은 더욱 높다 하겠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번 보궐선거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시장 자리가 공석이 된 바람에 서울시 행정에 공백이 없게 하는 취지에서 임기 1년의 서울시장을 뽑는 자리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영선이 후보로, 야권에서는 안철수, 오세훈, 나경원 등이 경합을 벌인 끝에 오세훈이 ‘국민의 힘’ 후보 자격을 얻었다.
서울시장 후보인 박영선과 오세훈은 각각 공약을 내세웠다. 박영선 후보는 이동권‧접근권 중심 공약을 내세웠는데, 임기 동안 모든 서울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교체하는 것과 관련해 1년 동안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장애계의 목소리가 있다.
거주시설 장애인 관련 공약에선 외출 시 정부와 상의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건 자기결정권 침해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라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의 반발을 살 소지가 있는 것이었다. 장애여성 지원정책에 있어선 장애여성 인권침해실태조사를 통한 통합적 지원방안 마련이라는 공약을 내놓아 매우 의미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오세훈 후보도 이동권, 접근권 중심의 공약을 내세웠는데, 장애인 버스요금 무료화, 승용차 LPG감면 건의, 발달지연아동 조기진단 등의 공약이 있었다. 그런데 저상버스나 특별교통수단의 적극 확충이란 언급은 없다,
또한, 본인이 운전할 수 없거나 가족 중에서도 운전자가 없는 경우나 가난한 장애인에게 실효성이 없는 LPG소비세 감면 건의는 장애계의 지적대로 조금은 의아스럽다. 10여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 예산에서 LPG예산은 꾸준히 증가했기에 이 정책은 오히려 운전이 어려운 중증장애인, 가난한 장애인 등에게 필요한 저상버스, 특별교통수단 등의 예산이 LPG로 인해 조금씩 잠식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버스요금 무료화를 내세웠는데 이는 장애인을 주체적인 대중교통 소비자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시혜의 대상으로 봄에 가깝다. 열악한 경제 사정을 고려해, 버스나 지하철, 철도 등 대중교통 이용요금을 일괄적으로 50%든 일정 비율을 할인하는 식 등으로, 장애인을 당당한 대중교통 소비자로 만드는 정책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버스요금 무료화는 한 마디로 포퓰리즘 공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의료접근성 강화에서는 발달지연아동 조기발견이 있었는데, 이것만 한다고 의료접근성이 강화되지 않음은 상식이다, 보건의료기관에 물리적‧심리적‧경제적 접근성 보장을 위한 구체적 조치 등이 있어야 장애인 의료접근성 강화를 말할 수 있는 거다. 이것이 보장되어야 코로나와 같은 엄중한 시국의 경우엔 전염병에 대처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경제적 접근성에서는 여전히 국가에서 비급여 지원이 부족하고 지원대상을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 한정 짓기에, 의료비 지원을 받으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한다. 물리적으로도 2층, 5층에 의료시설이 있는 등 접근할 수 없는 보건의료시설들이 많다.
보건의료계의 장애에 대한 인식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치과대학의 경우 경희대 대학원에서만 장애에 대해 알 수 있는 과정을 선택교과과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비급여의 급여 확장, 서울 소재 각 의과대학에 장애에 대해 배우는 전문과정의 필수과목화에 대한 단계별 계획 등이 나와야 했다고 본다.
결국, 오세훈 후보 공약은 장애인의 삶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차라리 낙제에 가까웠다. 여기에 장애인 운동권과 같이 사진을 찍은 다음 공약표를 가져가라고 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장애 관련 공약에 진정성이 있나 하는 의심도 든다. 지금은 당선인이 되어 서울시정을 보고 있지만, 앞으로 1년 동안 서울에 있는 장애인 등의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일할 것 같지 않다는 걱정만 자꾸 앞서게 된다.
■ 진주교대 응시 장애인 입시성적 조작
3년 반 전, 경남 진주교대에 응시했던 중증시각장애 학생은 서류전형에서 960점의 고득점을 받았다. 하지만 교대 입학관리팀장은 중증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 학생의 점수를 낮춰 탈락시켜야 한다고 입학사정관인 A씨에게 압력을 가했다. 당신 자녀의 선생이 장애인이라면 어떤지 생각해보라고, 또 장애인은 장애인을 가르치기 싫어한다는 것을 이유로 대며 A씨에게 압력을 가했단다.
반면에 입학관리팀장 친구의 딸에겐 면접 점수를 높이 주라고 했단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교대 입시에 자폐인과 정신장애인은 응시조차 아예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4월 중순 경 기사와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이를 보며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 중 일부를 보게 되어 분노가 치민다. 또한, 장애인은 장애인을 가르치기 싫어한다고 하는데, 편견에 불과하다. 실제로 필자 경우도, 건강 관련 설명하라고 하면, 아는 범위 내에서 자세하게 친구나 가족, 장애인 등에게 설명해줄 수 있다. 이처럼 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심지어는 비장애인에게 가르치거나 알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무조건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며 도와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느껴진다. 상당히 모욕적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직업적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신장애인 및 피성년후견인 관련 결격조항을 철폐해야 한다.
아울러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 시 법원이 판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구체적 타당성을 갖고 중증장애인에게 불이익 준 해당 팀장을 엄벌하도록 판결하는 것도 필요함을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한 법원의 장애 인식 제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장애인 고용 부진과 실업급여 급증
장애인의 날을 맞아 국민의 힘 김예지 의원이 고용정보원을 통해 장애인 구직급여 신청현황을 분석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작년보다도 구직급여 신청 인원이 늘어나고, 지급액이 급증했단다. 또한, 실업 문제에 대한 정부 대책이 부실하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는데, 고용률이 낮아진 원인으로 낮은 의무고용 이행률과 민간부문의 고용 창출 부진이 뽑혔단다. 고용률은 코로나 시국 4년 전보다 1.2% 낮아졌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기업의 경우에는 매출이 줄어들고, 게다가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해 인건비를 감소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보니 실업한 장애인이 많아지고 고용률이 줄어드는 것은 예상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의무고용 이행률이 낮은 데는 의무고용제 자체가 권리에 기반한 제도가 아니고, 여기에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도 형식적인 교육에 머무르는 것에도 그 원인이 있다. 따라서 교육은 ‘왜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나?’라는 사회의 질문에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가 합리적으로 대답할 논리를 체계적으로 만드는 장기적 노력이 중요하다 하겠다.
무엇보다 장애인 고용을 권리로 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정말 중요하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아무리 고용장려금을 물가 상승수준에 맞추고 고용부담금을 최저임금의 150%이상으로 높인다 한들 그런 대책은 고육지책에 불과하며, 장애인의무고용제는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이제는 장애인의무고용제를 넘어선 권리에 기반한 고용제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외에도 장애인 비하 발언 시정을 장애계에서 요구했는데도, 국회의원들은 계속 그런 발언들을 서슴치 않았다. 이에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비하 발언한 6명의 국회의원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당연한 소송이라고 보며 의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요구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또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무의식중에 외눈박이라는 말을 했다며 차별할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장애인을 일상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생활화되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장애인 차별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임을 추 전 장관은 모르는 것 같다.
특수교사의 자폐성 장애아동 학대 사건에 대해선 법원이 교육적 목적이니 학대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는 소식을 이번 달에 접하며 장애아동이 권리의 주체로 존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나면서도 답답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4월을 보내며,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달’은 여전히 장애인에겐 형식적인 달,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여전히 장애인은 권리의 객체이자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며, 4월에도 장애인이 처한 현실은 냉혹함도 아울러 확인하게 된다. 4월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그렇지만 말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헌신으로 장애인의 삶은 더욱 풍성해졌고,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더불어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장애인의 날 기념사는 별로 잘 와닿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장애인 복지를 위해 했다는 노력들을 열거한 것 또한 별로 체감되지도 않는다. 나름대로 노력하신 것은 알겠지만 말이다.
1년 365일 우리 사회가 권리의 주체이자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을 키우고 일상에서의 차별 시정을 위해 진정성 있게 힘쓰는 것이 장애인의 날, 장애인의 달을 기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감히 말하련다. 그것이 지금 상황에서 장애인이 원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권리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멀다. 현실은 냉혹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궁극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장애인들은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우리 사회를 향해 여러 방법으로 끈질긴 설득과 투쟁을 하며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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